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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는도토리 2025. 2. 22. 18:41

T.w - 약한 자살묘사

 

너는 어째서?

 

또다시 차가운 바닥에 누워 생각한다. 그리고 곧 깨닫는다. 아, 얘 글러먹었구나. 똑같아, 너처럼. 참는 게 익숙한 애야. 모처럼의 여름이 머리를 강타한다. 내리쬐는 태양빛, 광활한 구장, 그리고 함성 속 휘둘러진 야구배트처럼.

 

전과는 다르게 넘어진 감각이 불쾌하다. 떠도는 것들의 소음에 묻힌 네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움직이는 입모양이 그리 말하는 듯했다. 누구든 결백해, 이 세상 그 누구도 죄가 없다고, 너 빼고는. 창으로 엷은 빛이 스며들어 왼눈을 간지럽힌다. 빛이 정신을, 죄를 뜯어내는 기분이다. 그저 그랬다.

 

오래전에는 부정했을 것이다. 그 후 얼마 뒤로는 분노했을 것이고, 그 이후에는 절박하게 현실을 미루며 타협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정확히 그다음 단계였다.

 

네가 이것을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했음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너는 왜? 어째서 한 뼘 앞에서 멈췄는가?

 

시야가 기운다. 분명 머리를 얻어맞은 쪽은 너인데. 내가 되려 어지럽기만 하다. 너는 그와 닮아 있었다. 타들어 재가 된, 방 한 가운데 전등에 매달려 회전하던, 제 방으로 뛰어들어간, 나에게 원망의 말을 쏟아낸, 그리고 그 직전까지 모든 일을 홀로 감내한,

영원한 나의 반쪽.

 

대체 왜 내 인생에는 이런 것들밖에-

 

 

"네 얼굴은 못 봤어. 그래도, 네 성격은 대충 알겠네."

 

 

그리고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은 충동이었다.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겨도 참아 넘기고, 착한 척 굴고. 잠깐 다짐이라도 했나, 해서 기다려줬더니. 나처럼 호의를 베풀 생각일 거라고 나름대로 기대했는데 말이야."

 

 

내 행동은 분명한 호의였다. 다만, 그것을 적의로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네 꼴이 보기 싫었다. 그건 참으로 누군가와 엇비슷한 모습이어서. 아주 오래 전의 웃음소리를 떠올리게 해서. 비 속으로 흩어지는 화장터의 연기를 떠오르게 해서. 그리고 또-

 

 

"저기, 왜 그렇게 살아? 모르겠어. 너희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그저 속절없이 얼굴이 일그러진다.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누군가 떠올랐다. 그 웃음소리가, 쾌청한 여름날의 하늘이, 높게 떠오른 야구공 너머로 흘러가는 구름이, 우리 함께 보냈던 여름이.

 

분명히 '호의를 제공받은' 쪽은 너다. 잊어서는 안 된다. 난 그 어디도 다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죽을 것 같았다. 이것이 나에게만 호의로 받아들여질 거란 사실을 알기 때문에. 네가 날 원망하는 것이 당연했음에도, 너는 포기했기 때문에. 나의 호의가 받아들여졌대도,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나빴다.

 

불쾌했다. 머리 옆을 타고 흐르는 피도, 마치 받아들인 듯 보이는 네 얼굴도. 파란 천조각을 꺼내 멋대로 피가 흐르는 곳을 내리눌렀다. 내 표정이 어떨까, 나도 잘 모르겠다. 네 표정 역시도.

 

 

"기분 나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