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는도토리 2025. 2. 25. 01:01

T.w - 글자 반복, 무속 소재(약한 귀신 묘사), 유사 자해, 유혈


 

Theme - Shamans possession

 

이젠 불가능해, 그럼에도.

 

가만히 있는 것은 지루하다. 분명 그 정도의 감상이었다.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 정도로 마음이 조급해지는 걸까.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부분에서 실낱같은 흥미라도 느꼈는지. 아니면 그저 궁금증인지.

 

그래, 궁금한 부분이 있긴 했다. 딱 하나 알고 싶은 것. 옛적부터 함께했던 나의 신이, 지금은 대답조차 해주지 않는 그 오래된 영혼이 이곳에 있는지.

 

내가 아직 혼자가 아닌 것인지...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아무리 무령을 흔들어봐도 몰려드는 것이 그가 아님을 알고 있다. 다시금 백선을 펼친다. 어쩌면 객귀들이 몰려와 귀를 어지럽힐지도 몰랐다. 조용하다, 그리고 점차, 시끄럽다. 내가 왜 이러고 있더라...

 

불쌍한 영혼을 불러오고 악한 영혼을 내쫓는다. 무구란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불가능하다. 나는 단 한 순간도 완전했던 적이 없기에.

 

모든 속삭임이 휩쓸려 다가온다. 내게로 부르는 것은 쉽다. 다만, 원하는 이를 부르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왜 답해주지 않아요?

이제 믿을 건 당신 뿐인데...

 


 

아파, 아파, 아파, 아파,

 

비틀거리는 발을 내딛는다. 한 걸음 딛을 때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모처럼 머리로 열이 쏠린다. 입에서 나온 단어들은 완성되지 못했다. 불완전한 단어들을 하나하나 엮는다. 나는. 부름을, 실패했다. 완벽하게.

 

내 신은 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것들이 왔다, 신의 발 끝이라도 따라가고 싶어 하는 다른 놈들이.

 

그래, 나는 실패했다. 그것도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방식으로.

 

장실로 향했다. 제 의지도 아닌데 머리가 흔들렸다. 거울을 봐서는 안된다. 그런 생각에도 이미 눈은 그곳을 향해 있었다. 이쪽을 봐달라는 듯이 고개가 틀어진다.

 

거울 너머 수십 개의 눈이 나를 바라본다. 누군가 머리채를 휘어잡고 내리찍듯이, 순식간에 머리가 거울을 향했다. 가까이, 아주 가까이서, 그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를 악물었다. 그럼에도 앞은 점점 흐려졌다.

 

- 아아, 아파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수없이 들려오는 속삭임 사이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귀로 흘렀다. 한참을 무언가 내리찍는 소리가 들렸다. 눈앞이 붉게 물들고 나서야 몸을 뒤로 젖혔다. 머리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시야가 기운다. 비뚤어진 눈으로 앞을 보면 여러 손가락의 감각이 얼굴을 덮었다. 내 것이 아니야. 그야, 내 손은 두 개거든. 이렇게 많지 않으니까.

 

깨진 거울이 세면대로 하나 둘 떨어졌다. 조각 하나하나에 수백의 눈동자가 비쳤다. 거울이 있던 벽조차 피범벅이었다. 아직은 뜨거운 피가 흘렀다. 아파. 따가워. 보지 마. 드디어 미쳤구나. 내가.

 

...난 죽은 사람에게 죽을 수 있으니까. 너도 곧 알게 되겠지...

 


 

※ 지인지원

 

그런데 무엇이 이리 우스울까. 즐거웠다. 다문 잇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입을 열어 웃었다. 피 떨어져 흐르는 입으로 소리 내 웃었다. 손으로 피범벅이 된 머리칼을 흩뜨린다. 머리라니, 무슨 인과응보 같네.

 

...아...

 

...제발, 저 진짜 아파요, 살려주세요, 왜 답이 없어요, 할매, 밖에서는 맨날 그렇게 떠들어놓고, 아, 하하하...

 

...

이제 진짜 혼자네...

 


 

T.w - 폭력, 상해, 정신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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